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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실 남석진 러브스토리와 인생이야기

 

인간은 자기 중심적입니다.
대부분이 자기 위주로 생각을 하고, 과거의 일도 자신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하죠.
이런 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낸 고전 영화가 일본의 라쇼몽입니다.

극소수의 깨달은 사람 혹은 이타적인 사람만이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생각과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일반인들은 그러기 힘듭니다.

다만 사람마다 그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죠.

방송인 오영실을 보면 자기 중심적인 생각과 진실의 차이점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부부 생활을 할때 참아야 하는 것에 대해서도 좋은 시사점을 주는 것 같습니다.

 

오영실 남편과 가족 사진

 

탤런트 겸 아나운서 오영실은 1965년 1월 1일 서울에서 태어납니다(오영실 고향). 올해 50살이죠(오영실 나이).
(오영실 종교 개신교)
(오영실 학력 학벌) 중앙대학교 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홍익대학교 미대 금속공예과
(오영실 프로필 및 경력) 1987년 KBS 공채 아나운서 15기로 데뷔

 

가족오락관, 사랑의 가족, 가요톱10 등을 KBS에서 진행했으며, 이후 연기자로 변신해서 드라마 아내의 유혹, 민들레 가족, 남자가 사랑할 때, 더 이상은 못참아, 감자별, 너희들은 포위됐다 등에 출연합니다.


오영실은 어릴 적에 아버지없이 자랍니다.
오영실: "나는 내가 아버지가 없는 줄 몰랐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부재를 알았다. 7살 때 엄마를 따라 한복을 입고 아주 좋고, 넓은 데를 간 적이 있다. 알고보니 한복은 상복, 장소는 국립묘지였다. 아버지 돌아가신 줄도 모르고 마냥 뛰어 놀았다."

 

오영실: "중학교 때까지 내가 최고인줄 알았다. 하루는 작고 예쁜데 잘난 척 여자애 집을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 집에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우리 딸 이제 오냐'고 자애로운 얼굴로 반겨주더라."

 

오영실: "결국 몸져 누웠다. 몸만 누운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누웠다. 어린 나이에 '나는 쟤보다 착한데 왜 아버지도 없고 가난할까' 생각에 실어증이 걸렸다. 괴로워서 말도 안 나와서 하늘을 보고 원망밖에 안 했다. 그 충격으로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내내 의기소침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사과장수 딸, 아버지가 아프신 애들을 친구로 만나면서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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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에 참전했던 오영실의 아버지가 7살때 전사를 한 것입니다. 국가유공자의 딸이었죠. 오영실의 어머니는 이후 재혼을 하지 않고 오영실 삼남매를 홀로 키웁니다. 아마 젊은 나이에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네요.

이런 가정환경에서 자란 오영실이지만, 굉장히 밝고 씩씩하게 자랍니다.

오영실은 남편 남석진(이름)을 캠퍼스 커플로 만납니다.

오영실: "친구들과 단체미팅을 했을 때도 킹카가 몇 번을 연락해 왔지만 남자친구 때문에 거절했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오영실: "대학 동아리 선배가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준다고 했는데 6개월이 지나도록 말이 없더라. 나중에 이유를 물었봤더니 그쪽에서 '연애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더라. 그 말에 자존심이 상해 지금의 남편을 유혹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소개팅 날짜를 잡았다."

 

오영실: "사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청바지 입고 다니던 또래의 친구들만 만나다가 양복바지에 와이셔츠를 입은 된장국 같은 지금의 남편이 웃을 때 너무 귀여워 눈에 들어왔다."

남편 남석진은 당시 오영실보다 4살 연상이었던 의대생이었습니다(1961년 7월 14일생).


당시 인기가 높았던 오영실에게 관심이 없는 행동으로 주목을 끌었던 것이죠. 하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하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오영실: "남편과 결혼 전 심하게 다툰 후 헤어지려고 결심하고 안 만나줬다. 어느 날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의료용 메스와 종이를 꺼내 들고 ‘사랑한다, 앞으로 잘하겠다, 결혼하자’라는 내용의 혈서를 썼다."

 

오영실 남석진 부부 리마인드 웨딩 사진

 

결국 둘은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남혁수(이름), 남종수 두 아들을 두게 됩니다(오영실 배우자, 오영실 자녀 자식).

현재 오영실 남편 남석진의 직업은 의사(유방암 전문의)입니다.

(오영실 남편 학력 학벌) 서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나왔고, 인하대학교 대학원 의학 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현재 삼성서울병원과 성균관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인데, 서로 잘 맞습니다.
오영실: "결혼 후에도 남편이 전공의 과정을 밟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직장생활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남편이 자리를 잡은 뒤에도 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쉽게 직장을 그만둘 수가 없었죠."

 

하지만 살면서 조금씩 갈등도 생깁니다.
오영실: "남편과 7년 열애 후 결혼을 했다. 늘 한결같고 듬직한 모습에 끌렸는데 결혼 생활을 해보니 단점이 보였고 돈을 너무 안써서 휴대폰 하나를 안 사줬다. 그런데 아이들 물건은 잘 사준다."

 

오영실: "월급 통장 한 번 안가져다 주는 남편이 섭섭하고 자존심도 상했다. 아직도 매달 생활비를 받는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아이들 교과서를 비닐로 싸주면서 '난 어릴때 달력으로 쌌다'고 하는데 남편의 어린 시절을 이해하게 됐다."

 

오영실: "남편은 생활비 외에 내가 써야할 돈은 주지 않는다. 언제나 통장 관리는 남편이 했다. 남편이 주는 용돈으로 집 넓혀서 이사가느라 정말 힘들었다. 남편이 옷을 사거나 뭔가를 사는 걸 싫어한다. 쇼핑 때 필요한 것만 사고 집에 가야한다. 꼭 필요한 것을 사고 있는데도 남편의 표정이 굳어져 벌벌 떨었다."

 

확실히 오영실의 남편이 구두쇠에다 자린고비같네요.

오영실: "남편에게 발 마사지를 해주니 갑자기 5만원을 줬다. 오래 해주면 10만원도 줬다."

더구나 가부장적인 남편이 아닌가 합니다.

 

 

오영실: "(남편이) 대답할 말이 궁하면 안하고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도 안한다. 물어보면 대꾸 없이 그냥 묵살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같은 남편의 침묵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무시당하는 것 같아 화도 나고 대답할 가치도 없는 것인지 의문도 들더라."

 

오영실: "화가 났을 땐 눈에 띄는 리액션을 바라는데 감정 변화에 무딘 남편의 성격이 답답했었다. 답답한 남편 때문에 끓었다 삭히기를 반복, 하루는 그런 세월이 짜증이 나서 일부러 남편의 약을 올렸다.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무한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다."

 

오영실: "하루는 강력한 육두문자를 담아 남편에게 보낸 적도 있었는데 돌아온 답장이 가관이었다. 그 내용이 '나는 너의 거친 말이 굉장히 당황스럽다'는 것이었다. 그 정도면 화를 낼 것으로 예상했는데 돌아온 남편의 미지근한 반응이어서 발끈했다."

 

확실히 오영실과 남편 남석진의 성격이 많이 다르네요.
일반적으로 부부 사이에는 서로 대화를 많이 해야죠.
그런 의미에서 남석진은 남편으로서 잘못 행동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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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옆에서 지켜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양재진이 한마디합니다.
"오영실 씨가 말이 너무 많은 거다. 남편 분을 다른 방송에서 뵌 적이 있는데 나름 선별해서 대답하신다."

 

반면에 오영실은 이렇게 주장을 합니다.
오영실: "난 너무 희생한다. 내가 없어지고 엄마로 살면서 희생을 많이 한다. 그러다보니 우울증이 깊어졌다. 우울증인 줄 나도 몰랐는데 뭘하고 싶다는 마음이 없어졌다. 이후 2009년 갑상선 암 진단도 받았다. 이왕 걸린 암 가장 가벼운 암이라고 하니깐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속상하고 우울하면 좋을게 없다고 판단해서 습관처럼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결국 자신이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가정이 잘 유지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오영실의 말은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사실 오영실과 남석진은 연애할 때부터 서로의 성격 차이가 뚜렷했습니다.

오영실이 불이라면 남석진은 물이었죠.

오영실: "저는 어려서부터 애교가 많아서 엄마한테 용돈을 잘 타 썼고, 남편은 알뜰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대학시절 주머니가 넉넉지 못했어요. 그래서 제가 엄마한테 책 산다고 만원을 삥땅(?)치면 둘이 오천원, 오천원씩 나눠 쓰면서 남다른 사랑을 쌓았단 말이죠."

 

오영실: "하루는 남편이 다 해진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너무 마음 아파서 그길로 바로 당대 최고의 브랜드였던 리바이스에 데리고 가 남방과 청바지로 한 벌을 쫙 빼줬어요."

아마 남석진 역시 오영실의 이런 모습에 반해서 위에서의 말처럼 혈서까지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때로는 자신과 정반대의 사람에게도 끌리는 것이 인간이니까요.

 

오영실: "신혼 때 남편과 외국으로 여행을 갔는데, 오지랖 넓은 제 성격에 시댁 식구들 선물을 사느라 며칠을 보냈어요. 그러고는 마지막 날 결국 ‘내 선물은 아무것도 없다’면서 엉엉 울었죠. 그렇다고 남편이 제 것을 따로 챙겼을 리 없으니 그것 가지고 또 트집을 잡았어요. 그랬더니 남편은 ‘당신한테 다른 사람 선물 사라고 강요한 적 한 번도 없다. 당신이 필요한 걸 사면 된다’라고 하더라고요."

 

 

신혼 초부터 두 사람은 이런 갈등을 빚었죠.
그리고 핸드폰 사건을 보면, 두 사람의 성격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들어납니다.
오영실: "(90년대 초반만) 해도 휴대전화가 귀한 시절이었는데, 너무 비싸 직접 사지는 못하고 친한 선배한테 ‘전화기를 새 걸로 바꾸면 헌 것은 나를 달라’고 부탁을 해놨었어요. 그런데 얼마 뒤 선배가 휴대전화를 새 걸로 바꾸고도 저한테 연락을 안 하는 거예요."

 

오영실: "제가 왜 안 주냐고 물었더니 선배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니 남편이 주지 말라고 했어’라고 말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선배가 남편을 만나서 전화기를 주려고 했는데, 남편이 가입비가 20만원이면 너무 비싸니 없던 일로 하자고 했다는 거예요. 제가 얼굴이 얼마나 뜨겁던지, 순간 그동안 힘겹게 쥐고 있던 인연의 끈을 저도 모르게 놓아버렸죠."

 

오영실: "제가 말이 많은데다 목소리는 또 얼마나 커요. 밤늦게 부부싸움을 할 때면 남편은 창문 닫기에 바빴어요. 그렇지만 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말을 다 내뱉었죠. 콧방귀를 뀌며 ‘흥! 아나운서와 의사의 조합? 남들이 보면 환상적인 커플이라 생각하겠지. 이렇게 속이 곪아터지는 건 모르고’ 하면서 비아냥거리기도 많이 했어요."

 

 

결국 이때 오영실은 이혼을 결심하는데, 남편과 같이 미국 생활을 하면서 다시 한번 남편과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당시 남석진이 1년 반 동안 미국 워싱턴 버지니아대학교 교환교수로 가게 되면서 오영실 온 가족이 함께 미국으로 가게 됨)

 

오영실: "미국에 있는 동안 저도 학교에 다녔는데, 아침 일찍 한 시간 반 정도 운전을 해서 학교에 가야 했어요. 하루는 남편이 운전하면서 먹으라고 토스트랑 달걀을 싸주더라고요. 속으로 ‘운전하면서 이걸 어떻게 까나’ 하고 달걀을 집어 들었는데, 이미 껍질이 다 까져 있는 거예요. 순간 감동이 밀려왔죠. 고마운 마음에 달걀을 한입 베어 물었는데 세상에, 달걀에 소금간이 돼 있지 뭐예요. 남편이 달걀을 3등분으로 나눠서 십자로 칼집을 낸 뒤 거기에 소금을 밀어넣었더라고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그동안 남편에게 품고 있던 모든 원망이 한순간에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사소한 것이지만, 상대 중심의 생각(아내가 배가 고프지 않을까, 운전하면서 달걀을 깔는 것은 위험하겠지, 소금으로 간하지 않으면 너무 맛이 없을거야 등)이 총체적으로 녹아 있는 달걀이었습니다.
결국 이런 배려에 그동안의 상처받았던 오영실의 마음이 눈녹듯이 녹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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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한대로, 오영실이 불같고 외향적인 성격이라면, 남석진은 물같고 내성적인 성격입니다. 그리고 신혼 초부터 둘 사이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은 바로 재테크 문제였습니다.

 

오영실: "재테크의 시작은 집이었어요. 서울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듯 대출을 받아 첫 집을 장만했죠. 집값 9000만 원 중 절반이 대출금이었어요. 남편은 '모은 다음에 장만하자'고 했지만, '돈을 마련한 다음에 집을 사면 이미 늦는다'는 친정어머니의 충고를 받아들였죠."

즉, 신혼 초의 주도권은 오영실이 쥐었습니다.

 

오영실: "집들이할 때 제가 친구들한테 소고기를 사오라고 했는데 친구들은 제 얘기가 장난인 줄 알고 케이크를 사 온 거에요. 너무 속상해서 친구들 몰래 혼자 부엌에 가서 울었어요."

하지만 이 첫번째 집에 대한 투자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두번째 서울 강남 반포 아파트 집이 큰 성공을 거둡니다. 재개발 효과로 집값이 크게 뛴 것이죠. 아마 집테크를 주장했던 오영실이 기세등등하게 되어서 남편 앞에서 큰소리를 쳤을 것 같네요.

 

오영실: "그 다음에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죠. 10년 넘게 아는 분이 괜찮은 반찬 가게를 할 예정이라며 창업 투자 제의를 해왔어요. 제대로 된 계약서도 없었죠. 하지만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인 만큼 믿고 맡겼어요. 집을 담보로 1억 넘게 은행에서 융자를 받아 고스란히 동업자에게 건넸었어요. 주변 사람들 열 명이면 열 명 모두 말렸어요. 다들 계약서 꼭 작성하라고 하는데도 저는 '왜 사람을 못 믿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느냐'고 했어요. 결국 그 동업자가 도망가는 바람에 투자금의 반의반도 건지지 못했죠."

 

 

그래도 투자에 대한 오영실의 미련은 끝나지 않습니다.
오영실: "아는 사람이 '노른자 땅'이 있다며 '땅 테크'를 추천했어요. 일단 10배 수익을 보장하고, 5년 뒤 10배 보장이 안 될 경우 최소 2배라도 보장하겠다고 했어요. 주변에선 '기획부동산 사기' 느낌이 난다며 말렸지만,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듣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죠. 역시나 빚을 내 땅을 매입했어요. 하지만 5년 뒤, 최소 2배 수익은 보장해주겠던 사람들은 종적을 감췄어요."

 

오영실: "빚쟁이처럼 그 사람들을 쫓아다녔어요. 결국 어느 정도 손실을 보고 나머지 돈은 되돌려 받았지만, 5년을 불안감 속에서 살아야만 했죠."

 

오영실: "이번에는 방송에서 만난 주식 전문가 도움을 받아 처음엔 개인적으로 주식 투자를 했어요. 그러나 번번이 실패했죠. 그러다가 '대박의 손'이라 불리는 사람을 만났죠. 모 증권회사 이사라는 사람이었는데, '적어도 원금은 보장해준다'는 말을 듣고 역시나 빚을 냈죠. 석 달만 꼬박꼬박 돈을 받으면 사돈의 팔촌까지 끌어오게 되거든요. 원금 대비 10분의 1만 줘도 넘어가게 돼 있어요."

 

오영실: "그래서 초반엔 5000만 원만 투자하다가 빚을 내 5000만 원을 더 보탰어요. 그런데 이사라던 그 사람은 현직이 아닌 전임이사로, 일반 사이버 투자자였어요. 결국 투자금 1억 원 중 2000~3000만 원만 겨우 회수했죠."

 

오영실: "한참 사기당하고 울고 있는데 아들이 저한테 집에 먹을 게 없다고 떼를 쓰기에 용돈으로 사먹으라고 했더니, 주머니에 800원밖에 없다더라고요. 재테크라는 게 아들을 굶기면서까지 해야 할 일인가 싶더군요."

 

오영실: "지금은 다시 적금으로 돌아갔어요, 사실 재테크로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가더라고요. 지금 적금으로 들어가는 돈은 제가 새벽 네 시까지 드라마 촬영하고 받은 출연료에요. 그 돈은 예전 제가 갖고 있던 돈이랑은 너무 다른 거죠. 쉽게 쓰지를 못하겠더라고요. 옷도 덜 사게 되고, 먹는 사람들한테 베풀 일 있을 때만 좋은 데서 만나고. 그렇지 않으면 허름한 데서 그냥 싸게 먹어요. 새는 돈을 막고 규모에 맞게 소비를 하는 거죠."

 

 

위에서 오영실이 남편을 구두쇠라고 비난을 했는데, 자신의 월급봉투를 그대로 맡겼으면 아마 지금쯤 오영실 가족은 길거리에 나앉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사업은 재능과 때가 잘 맞아야 합니다. 오영실 어머니는 부동상 상승기에 살았기에 그렇게 집 투자를 해서 큰 수익을 얻었지만, 오영실의 시대는 상황이 좀 다르죠.


결국 이렇게 오영실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남편의 말이 맞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오영실: "(남편은 내 인생의) 동반자죠. 내 인생의 절정기 그리고 가장 힘든 모습도 보았으니 가장 편안한 남자예요. 만만하고 편안하고, ‘아’ 하면 ‘어’가 나오는 사람. 다시 태어나도 남편과 결혼할 거예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려고 하는 자유부인을 감당할 남자는 없을 거예요. 그런데 남편이 도망갈까 걱정이에요(웃음). 요즘은 남편이 소파에 앉아 있으면 착 붙어 앉아요. 남편도 저를 귀여워하고요."

 

오영실: "시간이 흐를수록 남편에 대한 믿음이 커져요. 여전히 곰살궂은 행동에는 ‘두드러기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지만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투철하고 아이들을 예뻐하는 모습을 보면 ‘결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남편이 가장 멋있게 보이는 순간을 꼽으라면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서 버리고 올 때, 내가 아플 때 물 한잔과 약봉지를 건넬 때에요. 대단한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진심이 느껴지는 소소한 행동을 통해서 큰 감동을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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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오영실은 방송에 나와서도 여전히 남편의 구두쇠 정신을 욕하지만, 이것은 그냥 방송을 위한 이야기일 뿐, 속으로는 그런 절약 정신을 고마워할 것 같네요. 남편 덕분에 완전히 거덜나는 것은 면했으니까요.


사실 오영실 남석진 부부의 보수적인 경제 운용이 무조건 맞는 것은 아닙니다. 아내 혹은 남편에게 사업적인 재능이 있다면, 부부가 잘 상의해서 그것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것이 좋겠죠.

또한 남석진의 말과 의지가 모두 맞는 것도 아닙니다.
둘째 아들이 대안학교를 들어갈 때는 오영실의 주장이 옳게 먹힙니다.


오영실: "갑산성암 수술 이후로 아이들 교육 문제로 아등바등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공부를 못하면 못하는 대로 아이가 올바른 사고방식을 지닐 수 있도록 잘 이끌어주는 게 부모 노릇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거든요."

 

결국 오영실은 전남 벌곡에 있는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냅니다.
오영실: "아이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학교 생활을 즐거워하고 예전에는 쉽게 찾지 못했던 공부 의욕도 점차 갖게 됐어요. 아이가 2주에 한 번 집에 오는데 그때마다 학교 얘기, 친구 얘기 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죠."

 

오영실: "처음에는 남편의 반대가 심했어요. 제도권 밖의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죠. 하지만 저는 직접 벌곡에 내려가 학교를 둘러보고는 마음을 굳혔어요. 마침 그날 아이들이 학예회를 하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표정이 밝고 발표 내용도 정말 창의적이더라고요. 지금은 남편과 아이 모두 저한테 고마워하죠. 덕분에 요즘 집안에서 발언권이 세졌어요."

 

 

서울대 출신의 수재인 남편으로서는 더더욱 아들의 대안학교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오영실의 모든 말과 행동이 잘못은 아니고, 때로는 옳은 일을 할 때도 있습니다.
아마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 부부가 되었다면, 이렇게 서로 보완해주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처럼 오영실 부부는 정말 서로 상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혼하지 않았던 것은 두 사람의 '참고 살자'는 생각 덕분이었습니다.

 

오영실: "(우리 부부가 성격이 맞지 않아서) 몇몇 친구들은 심지어 이혼을 권하기도 했어요. 새해 첫날부터 남편에게 “내 소원이 뭔지 알아? 둘째아이까지 장가보내고 당신하고 이혼하는 거야” 하고 극한 말까지 던졌을 정도죠. 다만 친정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만큼은 편부 편모 밑에서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이렇게 오영실은 참고 참으면서 살다가 마침내는 남편의 매력을 재발견하게 됩니다. 가정에 책임감이 있고, 또 삶에 안정감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죠.
만약 오영실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남편과 이혼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소중한 가정은 깨졌고, 본인 역시 막무가내 투자로 완전히 실패하지 않았을까 하네요.

 

 

여기서 부부 생활을 할때 '참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부가 서로 맞지 않고 다툼이 많을 때도 이혼보다는 한번 참고 살아보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남편이나 아내의 불륜이나 폭력, 술버릇 등을 참고 살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참아서는 안되는 문제죠.

 

다만 배우자와 성격이나 생각이 맞지 않을 때는 혹시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참는 것이 오히려 더 나은 결과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 배우자의 말이 옳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자기 중심적인 대부분의 인간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죠.
오영실 역시 여러 번의 사업 실패와 오랜 시간이 경과된 뒤에야 남편의 말이 옳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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